고양이에 먹히거나 건물 유리창에 부딪치거나

홍도는 사시사철 푸른 나뭇잎을 볼 수 있는 상록수로 우거져 있다. 소나무를 비롯해 동백나무, 보리밥나무, 구실잣밤나무, 후박나무, 돈나무 등 각종 나무와 풀만 545종이나 산다. 또 홍도비비추, 홍도원추리, 홍도서덜취처럼 섬 안에서만 자생해 이름 앞에 ‘홍도’가 들어 있는 식물도 많다. 홍도 자생풍란은 과도한 채취로 지금은 섬 주변에서 흔히 볼 수는 없지만 아직도 수집가들 사이에선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인기가 높다.

대다수 새들이 벌레를 잡아먹지만 나무 열매도 지친 새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된다. 보리밥나무의 열매도 그중 하나다. 일명 ‘보리똥나무’라고도 불리는 이 나무는 덩굴나무의 일종으로 홍도를 비롯한 해안가 일대에 서식한다. 늦봄인 4~5월경 가지에 크고 붉은 타원형 열매를 맺는데, 그 맛이 달콤하면서도 새콤해 사람이 먹어도 손색이 없다. 보리밥나무 열매는 기나긴 여행을 하는 붉은부리찌르레기 같은 새들에게 더없이 훌륭한 영양 공급원이기도 하다. 열매 속 당분이 기나긴 날갯짓 끝에 섬에 도착한 지친 새들에게는 높은 열량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씨앗이 더 영글고, 섬을 찾는 철새들이 느는 5월경에는 새들이 열매를 따 먹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얼마 전 센터 연구자들은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철새들이 보리밥나무의 생장과 번식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열매를 먹은 새들은 섬 곳곳에 배설물을 떨어뜨리면서 배설물 속에 섞여 있는 보리밥나무 열매 씨를 널리 퍼트리고 있었다. 게다가 배설물에 섞여 있는 씨앗은 보통 씨앗보다 성장 속도가 훨씬 빠르다. 채 센터장은 “새가 소화시키는 과정에서 씨앗 주변의 불필요한 물질이 없어지고, 따뜻한 체내에 있으면서 성장이 촉진된 것으로 보인다”며 “새와 나무가 서로 생존을 위해 공생하고 있는 흥미로운 결과”라고 말했다.

(왼쪽) 3~5월 섬을 찾는 찌르레기들이 가지에 앉아 한가롭게 쉬고 있다. (오른쪽 상)들고양이에게 잡아먹힌 뒤 털만 남아 있는 철새 사체. (오른쪽 하) 배설물에 섞여 떨어진 보리밥나무 씨앗의 생장 과정을 연구하기 위한 화분들.

최근 홍도와 흑산도는 때 아닌 홍역을 치르고 있다. 들고양이 개체가 급격히 늘면서 지쳐 쉬고 있는 새들을 마구잡이로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살아온 족제비는 스스로 개체 수가 조절이 되지만 고양이는 인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섬에 버려진 고양이나 배를 타고 흘러들어온 고양이가 날갯짓을 하기도 어려운 지친 철새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먹으면서 철새의 서식 환경에 심각한 위협으로 떠올랐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면적이 좁은 홍도는 최근 들어 개체 수가 조절되고 있지만 흑산도는 섬 깊이 숨어버리는 말썽쟁이 고양이들로 아직도 골머리를 썩고 있는 실정이다.

건물 유리창에 부딪쳐 목숨을 잃는 새도 해마다 늘고 있다. 일명 ‘윈도스트라이크(Window Strike)’로 불리는 충돌사고다. 흔히 공항 주변에서나 일어날 법한 사고지만 최근 홍도와 흑산도에서도 점차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두 섬을 찾는 관광객이 해마다 늘자 관광지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벌어지고 있는 기현상이다. 건물 외관을 예쁘게 하기 위해 설치한 대형 유리창이야말로 새들에겐 가장 치명적이다. 유리창에 섬 반대편의 숲이나 바위, 바다가 반사된 모습을 보고 착각을 일으킨 새들이 그대로 날아가다 머리를 부딪쳐 아까운 생명을 잃는 것이다. 대부분 목숨을 잃지만 센터로 구조돼 들어와 치료를 받은 새들도 10마리 중 한두 마리만이 겨우 목숨을 건진다.

GPS로 희귀종 슴새 경로 처음 밝혀

철새의 이동과 생활은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많다. 흑산도팀을 이끌고 있는 홍길표 팀장은 “철새에게 가락지를 붙인다고 해도 중간에 어떤 경로를 통해서 이동하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연구진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이용해 철새 이동 경로를 추적하고 있다. 위치 정보를 무선 신호로 보내는 작은 단말기를 새의 등에 달아 필요할 때마다 위치를 알아내는 방식이다. 최소 12시간 단위로 위치를 알아낼 수 있어 이동 경로를 연구하는 데 효율적이다. 센터는 2008년부터 이 단말기를 희귀종인 슴새 10마리와 흰꼬리수리 등 13마리에 달아 경로를 추적했다. 그리고 지난해 희귀종 슴새의 이동경로를 처음으로 밝혀냈다. 슴새는 3월~10월 우리나라에 머물며 번식하다가 동아시아 지역 무인도로 이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위성 추적 결과 전남 신안군 칠발도에서 태어난 새끼들이 22일간 3600km를 날아 싱가포르와 베트남뿐 아니라 필리핀에서도 겨울을 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상)오구라 타케시 연구원이 포획된 중백로를 촬영하고
있다. 일본표식협회 회원인 오구라 연구원은 가락지 부착 분야의 전문가(밴더)다.
(하)남현영 연구원(왼쪽)과 서슬기 연구원이 길에서 구조된 새에게 영양제를 먹이고 있다.

슴새가 두 갈래로 갈라져 인도차이나 반도는 물론 필리핀 쪽으로도 이동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GPS를 이용한 연구 역시 한계는 있다. 위치추적을 할 때마다 줄어드는 배터리 수명 때문에 연구할 수 있는 기간이 1년을 넘기기 힘들다. GPS단말기를 묶었던 끈이 중간에 풀리거나 천적에게 잡아먹혀 사라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홍도와 흑산도를 찾는 철새들이 대부분 1년생이라는 점도 아직까지 풀리지 않고 있다. 실제 홍도에서 해마다 포획되거나 관찰되는 철새들 가운데 태어난 지 2~3년 된 성조(成鳥)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에 대해 홍 팀장은 “일부 새들은 무리 내에 암수의 성비(性比)의 편차가 크거나 암수가 따로 다른 경로로 이동하다 번식지에서 만나 짝짓기 하는 경우가 있다”며 “아마도 새들이 연령별로 다른 무리를 지어 이동하거나, 다른 경로로 이동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한다. 그는 이어 “철새의 특성은 한두 해 관찰해서는 알아내기 힘들다”며 “특히 지구온난화의 영향 문제는 최소 10년 이상 연구해야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7월 철새연구센터, 흑산도로 확장 이사

홍도는 습지가 있는 흑산도와 달리 빗물이 그대로 스며드는 지질 때문에 물이 절대적으로 모자란다. 한 주에 한 번 담수화 시설에서 물을 공급받아 아껴 쓰거나, 빗물을 받아 사용해야만 한다. 매일처럼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하는 일은 홍도에서는 사치에 가깝다. 게다가 섬 안에는 차가 한 대도 없기 때문에 생활필수품을 좁은 골목길을 따라 섬 중턱까지 직접 지고 올라와야 한다. 연구자들의 고충도 그만큼 크다. 외딴 섬이다 보니 연구원 한 명을 빼고는 몇 년째 가족들과 떨어져 산다.


섬 주민들은 센터 연구원들을 ‘철새팀’, ‘철새’라고 부른다. “출장 갔다 왔나. 안 보이데.” “철새, 오늘 회식상 뭐로 준비해줄까.” 섬 곳곳을 촘촘히 이어주는 작고 아담한 골목길에서 만난 주민들은 마치 동생이나 아들, 딸을 대하듯 안부를 물었다. 뭍에서 오는 관광객을 제외하고 고작 300~400명이 사는 작은 섬에서나 볼 수 있는 정겨운 풍경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섬 주민들이 철새팀을 반겼던 것은 아니다. 센터가 섬에 생길 때만 해도 주민들의 반대는 거셌다. 섬 주민들은 뭔가 규제를 할 것 같은 기관이 들어온다는 데 심한 거부감을 보였다고 한다. 생계를 위해 자연을 이용해야 하는 주민의 입장에선 그러는 것도 어쩌면 당연지사다. 채 센터장을 비롯해 젊은 새 연구자들은 주민을 만나며 일일이 설득해야 했다. 그리고 오해는 금세 풀렸다.

노형수 연구원은 “지금은 반찬도 나눠 주고, 새가 죽어 있거나 다쳐 떨어져 있으면 주워서 갖다 줄 정도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섬 생활은 물론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수의사 출신의 김희종 연구원은 “섬 주민들이 땅에 떨어진 다친 새를 직접 데려오거나 안 보이던 새를 보면 연락을 해온다”며 “센터 활동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철새 연구는 중요한 의미를 띤다. 조류독감(AI) 바이러스를 비롯해 살모넬라나 대장균의 일종인 O-157이 철새를 통해 전염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각국은 비상이 걸렸다. 국내에서도 2005년 전 세계에 AI 바이러스가 확산돼 철새를 통한 전염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철새 연구의 중요성이 인식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약 1200마리를 포획해 분석한 결과 다행히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특히 장거리를 날아 서식환경이 다른 지역을 경험하는 철새들은 기후 변화나 해당지역의 환경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바로미터’나 다름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나라별 환경을 평가하는 환경지속성지수(ESI)에 철새를 주요 기준을 삼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철새 연구는 막 걸음마 단계로 들어서고 있는 실정이다. 아직까지 전국을 통틀어 철새를 관찰하는 전문 연구시설은 철새연구센터 단 한 곳뿐이다. 전국에 3000개 이상의 철새 관련 시설을 운영하는 미국은 물론, 60개 이상의 연구시설과 엄청난 마니아 집단을 보유한 일본, AI 바이러스 확산을 감시하기 위해 최근 시설을 70곳에서 550곳으로 늘린 중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들 나라는 50~100년 가까운 연구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남현영 연구원이 홍도 주변 무인도로 날아온 철새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홍길표 팀장은 “홍도와 흑산도 외에도 국내 섬 10곳 정도에 모니터링과 밴딩을 담당하는 팀을 파견하는 수준 정도 돼야 세계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올 7월 철새연구센터를 홍도에서 흑산도로 옮긴다. 현재 흑산도 흑산면 진리 배낭기미 습지 일대에는 센터가 옮겨 들어갈 2층짜리 신축 건물 공사가 한창이다. 새로 마련된 센터에는 그간 공간 부족으로 한 사무실에서 해결해야 했던 여러 연구들을 나눠서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다. 철새의 계통을 연구하기 위해 꼭 필요한 DNA분석실과 구조된 새가 쉴 수 있는 공간도 처음 마련했다. 채희영 센터장은 “새로 짓는 센터가 완공되면 센터 소속 연구자들 외에 철새 연구를 하고 싶은 과학자들의 방문 연구가 가능해져 철새 연구가 더 활성화될 것”이라며 “철새 관찰과 연구의 저변 확대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3일간 함께 지낸 철새 연구자들의 바람은 거의 하나였다. 더 많은 사람들이 새를 기피대상이나 사냥감으로 보지 않고 우리 주변 자연의 일부로 바라보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를 찾는 새들에 대한 폭넓고 과학적인 연구가 이뤄지도록 관심을 가져주길 바랐다.

“한 번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여보세요.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 새 소리가 들리고 있는지요. 세상이 다르게 느껴져요.”

흑산도를 떠나기 전 새로 개통한 흑산도 일주도로에서 만난 흑산도 철새팀의 막내 김우열 연구원이 던진 의미심장한 말이다.

 

박근태 기자ㆍkunta@donga.com

Posted by 하루에 과학 한 잔 더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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